여화

예진의 생모 여화는 죽은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을 주지 않는 언궐에게 항상 애정을 갈망하였는데, 예진을 낳고 몸알 푼지 얼마 되지않아 요괴에 홀인듯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언부는 도성과 근처현의 숲까지 모두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요괴는 조용히 그르렁 거릴뿐이었다. 가면을 쓴 모습은 사람이었으나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늦은 밤이나 혼자 외로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마다 나타나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 줬다.

예를 다하지만 마음이 없는 관계를 여화는 잘 견디지 못했다. 언궐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노력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었다면 여화나 언궐은 이루었어야했다. 하지만 두 사람중 아무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여화은 따뜻해진 날씨에 오랜만에 시종들 몰래 밤산책을 하다가 기다리던 손님을 만났다. 이렇게 몰래 혼자 와야만 만날수 있은 손님이었다. 

"이 배안에 있는 아이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여화는 요괴의 품에 안겨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몸이 약해서 아마 아이를 낳다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이 아이라도 나를 닮아야 누군가가 이 아이를 보고 나를 기억해주지 않겠어요?" 

요괴는 배위에 올려진 여화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게며 여화를 조금 더 끌어당겨 안았다. 여화는 요괴의 가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천천히 벗겨진 가면뒤에는 미남자의 얼굴을 한 요괴가 여화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화는 요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얼굴을 알았으니, 이름을 알아내어 나중에 구천을 떠돌게 되면 당신에게 갈께요."

여화는 여느때처럼 밝게 웃었지만 요괴는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여화는 날이 밝는 것을 보고 잠시 졸았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침상위에 있었다. 마치 꿈을 꾼듯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그렇게 외로움이 여화를 덥쳤다. 얼마 뒤 여화가 지내는 내실 문고리에 작은 옥패같은 것이 메달렸는데, 시비나 여화조차 눈치채지 못하였다.

산달이 가까워 곧 산파가 집에서 기거하게 되고 날이 점점 더 더워졌다. 칠월 보름이 되기 일주일 전쯤 산통이 시작되고 산파가 내실로 들어갔는데, 그때 언궐이 내실에 걸린 그 옥패를 보았다. 주역에 크게 관심이 없던 언궐이지만 그 옥패가 저승사자를 막는 액막이 부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양과 내용이 기괴하여 의심하던차에 산파가 나왔다. 아들을 낳았으나 여화가 몸이 약하여 의원이 와야할것 같다고 고한 산파는 곧 주변에 있던 시비들에게 따뜻한물과 깨끗한 천을 부탁했다.

의원이 곧 도착하여 내실로 들어간지 한참만에야 산파가 강보에 싼 불그스름하고 꼬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이를 본 선대언후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언궐은 여화에 대해 물었는데 산파는 의원님께 들으시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선대언후는 체통과 예도 다 져버리고 젖먹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에서 아이를 떼놓지 않았다. 여화는 예진을 낳고 일주일만에 눈을 떳는데, 이상하게 아이를 찾지 않았다. 젖먹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피곤하다며 방에서 쉬곤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곧 떠날 사람이 아이에게 정을 떼려는 것 같았다.

언궐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문고리에 있던 그 옥패가 어느순간부터 여화의 머리장식이되어 한시도 떼놓지 않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세달이 지났다.

아이는 선대언후가 전에 지어놓은 이름중 고르고 또 골라서 예진이라 지었고, 여화는 내실정원을 산책하다가 사라졌다.

여화가 사라진날 여화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상을 받은 후 외출할 채비를 했는데, 시비들이 걱정이되어 묻자 답답하여 정원을 산책할거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외출을 하려는 것처럼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장신구로 치장을 했다고 한다. 그녀를 따르겠다는 시비들을 물리고 여화는 정원 제일 안쪽에 있는 연못으로 가는 것이 시비들이 그녀를 본 마지막 이었다.

시간이 지나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그녀가 걱정된 시비들이 여화를 찾아 온 정원과 국구부를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못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목격된 연못 근처에서 여화가 머무는 문고리에 걸려있던 그 옥패가 발견되었는데, 그 옥패에 부적으로 쓰여있던 문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후에 언궐은 이 사실을 선대언후께만 말씀 드렸고, 여화는 산후통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언궐은 여화릉 찾기위해 수색을 하며 산에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주었는데, 그중에 하나를 몰래 빼돌려 여화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녀가 남긴 옥패는 선대언후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진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