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긴 그물 사이의 사연

나들이를 좋아하고 밝게 웃는 동생이었다. 서툰 솜씨로 서로 시를 짖거나 노래할때도 항상 부끄러움이 많아 뒤로 빼던 동생이었다. 그 해 여름 아버지께서 관직에서 물러나신 이후로 동생은 부쩍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은 찾아와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께선 현태자에 대해 어찌 생각 하시는지요?”

언소의 질문에 언궐은 의아했다. 혹시 그녀가 최근 조정의 일을 아는 것만 같이 물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질문이기도 했다. 태자 소정덕은 황제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다. 황제도 태자도 백성들의 삶을 돌보기 보다는 나라를 넓히는데 더 욕심이 많았다. 북연, 대유, 동해의 끊임없는 침범과 약탈 주변국을 통합하면서 생긴 민족 간의 마찰로 국내외의 상황은 매우 복잡했다. 아버지께서는 황제께 몇 번이나 국내 정세를 돌보아야 한다고 충언하셨으나, 태자와 무신들의 의견만 중용하였고 국내정세를 걱정하는 문신들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문신들 중 누군가가 아버지를 모함하였고 무신들과 타협하여 조정을 어지럽혔다. 종국에 아버지께서는 예부 관직을 내려 놓으시고 태사로 자리를 옮기셨다. 태사는 궁궐내에 교육을 담당하는 최고의 관직이었으나 명예직이나 다름 없었다. 궁궐의 출입은 자유로우나 그것은 아버지께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외종숙 종질 이었던 태자비께서 그 점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5황자였던 소선과의 혼인을 주선하였고, 그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언소는 15살의 나이에 황자비가 될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런 질문을 해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소선이 아니라 왜 태자에 대해 묻는것일까? 혼란스러운 조정에 국고는 점점 비어갔고, 승승장구하는 대량의 군대 덕분에 조정내에서는 전체적으로 국내정세를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5황자인 소선은 태자처럼 무예에만 심취한 자는 아니었으며, 다른 황자들처럼 서생노릇하듯 탁상공론하며 책만읽는 자도 아니었다. 태사로 자리를 옮기신 이후로 부쩍 친해지셨는지 종종 궁금한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고 물어오는 그를 칭찬하곤 하셨다. 

어느날은 집에 찾아와 가르침을 받겠다고 하여 시종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른 황자들처럼 따로 궁에서 나와 거처를 꾸리지 않아서 종종 집에 머물다 가기도 했다. 특별히 무리를 만드시거나 당쟁하시는걸 좋아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천천히 조정과 멀어지셨다.

황제는 5황자인 소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특별히 뒷배가 있는것은 아니었으나 도와 예를 지키려는 마음을 간직하며 학식이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기도 하였고, 그렇다고 무예를 등한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황자들은 유독 태자인 소정덕을 두려워 하였으나 소선만큼은 그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가끔 초식을 나누기도하고 함께 기방에 가기도 하는 등 태자와 유독 각별한 사이였다. 

태자는 본인이 황제가 되면 소선이야말로 제일 믿을 수 있는 장군이 될 거라며 그를 아꼈지만, 정작 소선은 소정덕의 예를 무시하는 태도에 항상 불만이었으며 잔소리를 해대곤 했다. 다행히 무골인 태자는 그 잔소리를 아우의 귀여운 애교로 생각하여 흘려듣곤 하였지만, 소신있는 충언을 하는 소선을 신임했다. 

“만약 지금의 태자가 황제가 된다면 양은 5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망할것입니다.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현재 거의 모든 국고가 비어 있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언소의 말에 언궐은 놀랐다. 언태사의 고명딸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꼭 빼닯은 누이동생은 어머니처럼 잔병치레도 많았다. 걱정이 많은 만큼 주변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언소는 샘도 많고 정도 많은 아이였다. 언제나 어린 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깊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언궐은 괜히 무안해졌다. 

하지만 입 밖으로 쉽게 내 뱉을 만한 말은 아니었다. 태자는 조정의 많은 무신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 사병도 많았다. 마치 비단천을 고르는 듯한 덤덤한 말투로 뱉어지기에는 그 말의 뜻이 너무 무거웠다. 언궐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앞에 앉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는 것을 말로 할 때, 항상 조심 하셔야 합니다. 귀한 황자비가 되셔야지요.”

그 해, 초여름 대나무 사이로 더운 바람이 지날때, 언소는 5황자 소선의 정황자비, 현비가 되었다. 결혼제례는 너무 성대하지도 약소하지도 않게 황궁에서 치러졌으며, 황제는 담담했으나 태자가 크게 기뻐했다. 언궐은 괜히 섭섭했다. 그의 여동생은 딱히 황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가문을 생각했을 것이며, 앞으로의 정세도 파악하려 했을 것이다. 15살 소녀가 해야 할 선택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시자마자 사당으로 가셨다. 아버지 역시 편치 못할 마음이리라. 

어리기만하고 항상 말썽쟁이라고만 생각했던 여동생이 황자비가 되어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났다. 그녀는 앞으로 마음대로 궁밖을 나갈수도 알 수 도 없을것이다. 더 슬픈 것은 그녀는 그것을 알고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어여쁜 여동생은 그 선택을 할 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언궐은 그것이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를 일이다.

당시 소선은 금릉내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순방영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혼인을 계기로 태자가 본인의 사병을 순방영으로 통합하여 소선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황궁에 입궐이 잦아진 언궐은 소선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두루두루 면식을 트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순방영 둔장 임섭이었다.  입섭은 원래 난대현에서 추천되어 온 임효렴의 아들이었는데, 관직에 뜻은 없으나 세상에 뜻이 없는 자는 아니어서 그의 무예가 출중하여 무과시험을 치르고 순방영에 입대한 자였다.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강호에 영향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임가에는 다양하고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았는데 임섭은 출신가문이나 봉호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았다. 강호를 유유자적하던 시인이나 문호들도 임섭의 추천을 받아 관직을 얻거나 언후부를 돕기도 하였다. 신분의 귀천 없이 여러 사람들을 등용하여 주변에 두었는데, 그 중에 학식이 높은 자들이 임가에 머무르며 언후와 교류하였다. 특별히 금릉에 연고가 없던 임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언궐과 임악요의 사주단자를 교환하기까지 이르렀다.

임악요는 임섭의 누이 동생으로 무예와 문예가 출중하였으며 도교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 때문에 언궐과 임악요는 종종 날이 좋으면 금릉 근처에 있는 도관을 방문하여 참선하곤 했다. 두 사람은 이미 정혼한 사이였기 때문에 함께 강호를 유랑하기도 하였다. 언후는 그 것을 알고 혼인을 서두르려 했으나 정세가 불안정 해져서 미루어졌다.

북연, 대유, 동해 세나라가 연합하여 양나라를 나눠가지기 위해 협공하였는데, 그때 출정했던 장군들과 평소 친분이 있던 언후의 뜻으로 언궐이 그들의 막사로 보내졌다. 대유는 당시 무관들의 반란으로 인해 전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협공에 북연과 동해의 동의를 얻은 것 같았다. 게다가 북연의 조정은 예를 멀리하였고, 동해는 태자들의 황권다툼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다. 평소 유람을 다니며 정세를 잘 알고 있던 언궐은 그들을 하나하나 방문해 적절한 조언을 하며 회유하였고, 세나라는 전의를 상실하고 하나 둘 전영을 철수하였다. 

금릉 국경 변방을 헤메며 반년이상 금릉을 떠나있던 언궐이 다시 금릉에 돌아왔을때 언궐은 관을 올린지 얼마 되지 않은 약관의 나이였다. 이 후 황제가 그 공을 치하하여 언궐에게 병부 내사낭관의 관직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당시는 국내상황도 혼란했던 차라 언궐의 공은 유독 더 빛이 났는데, 운남왕부의 왕좌싸움으로 소소한 내전이 많았고, 그 때문에 황제는 운남왕부 태수의 손녀와 소선을 혼인 시킨다. 그로써 운남왕권을 태수로써 견제하고 운남으로의 불필요한 군사 출정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 소식을 뒤늦게 들은 언궐은 샘이 많은 누이 동생이 걱정되어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어 입궐하였다.

“병부 내사낭관 언궐, 현비마마를 뵙습니다.”

예를 차려 공수하는 언궐을 반갑게 맞이하며 현비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찌나 많았는지 오라버니께서는 제가 궁금하지도 않으셨습니까?”

그리고는 모든 시비들을 물리고 언궐을 대한 현비는 황궁내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선은 딱히 왕이 되려는 마음이 없었다. 태자가 소선을 아꼈을 뿐더러, 황제또한 모든 황자들에게 후했고, 나라 역시 태자가 벌이는 영토전쟁을 제외하고는 큰 일도 없었다. 황제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하는 전쟁이 가능했던건 그만큼 나라가 태평성대했기 때문이다. 황자들 중에 딱히 권력을 탐하는 자도 없었을 뿐더러 우애도 남달랐다. 게다가 최근에 새로 들인 후비인 월비는 소선의 총애를 독차지 하고 있던 터였다. 사람들의 홀대에 익숙하지 않은 현비가 이런 고충을 언궐에게 털어 놓았다.

“앞으로 더 많은 후비가 올 텐데, 겨우 이런 일로 상심하시다니요. 그보다 아버님께서 특별한 말씀 없으셨습니까? 요즘 부쩍 도관 출입이 잦으셔서 뵙기가 쉽지 않습니다.”

“황궁에 있는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저보다 자유로우신 오라버니께서 제게 물으시다니요? 그보다 곧 원소절인데 강가에서 등구경 하던 것이 그립습니다.”

평소와 다른 대화의 흐름에 이상함을 느낀 언궐은 결국 별다른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고 국구부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국구가 된 이후로 정사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셨고 여숭선생, 대학자 주현청과 함께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몇 달 뒤 갑작스럽게 임가에서 정혼을 파혼하겠다는 서신이 왔고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임악요가 소선과 혼인하였다. 

임악요는 시집가는 날 언궐에게 서신을 전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과 그동안의 마음은 진심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그녀와 보낸 세월 10년은 소선의 권력 앞에 6개월만에 무너졌다. 그녀의 뜻이 아니었을 지는 모르나 언궐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족을 사랑했으며, 그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그저 입신양명의 도구가 될 것임을 알고도 소선과 결혼한 것은 그녀의 잘못 만은 아니었다. 언궐은 무언가를 잃은 듯 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타오르던 분노는 어느새 잔잔한 수면처럼 가라 앉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이성은 심연의 물처럼 차가웠다. 대상이 없는 분노,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당함만큼 답답한 것은 없다. 삶의 부질 없음이 그와 같다.

임악요와의 결혼 이후 소선과 임섭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두 사람 모두 무예에 관심이 많았을 뿐더러 언궐과 어울리는 사이 본인들도 모르게 현세의 영토확장때문에 뒷전이 되어버린 백성을 함께 걱정했다.

크게 상심한 언궐은 내사낭관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주변국들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각 나라를 시찰한다는 명목으로 겉돌기 시작했다. 각 나라의 문신들과 대담을 나누고 그 나라의 상업과 지리적 특성 및 각 지역의 특산물에 대해서도 세세히 조사했는데 이를 후에 호부낭관이었던 루지경과 공유하여 그의 출사길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전쟁으로 빈 국고를 채워 넣는데 큰 도움이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언궐은 병부 내사주사가 되었다. 교지를 받기 위해 금릉으로 돌아왔을때 언국구는 언궐을 내실안뜰로 불러 말했다. 

“마음의 무게는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애초에 아무것도 담지 않으면 한 없이 가벼워지는 것이 마음이고, 그것에 무엇을 담으면 무거워지고 불편해지는 것이다.”

언궐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자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줄이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늘려줘야 하고,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야 하며, 망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언궐이 대답했다. “먼저 주었으니 이제  빼앗으면 됩니까?” 

아버지는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엇을 주었느냐?”

언궐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후 언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예전보다 좀 더 금릉에 머물렀으며 언국구를 도왔고, 가끔 현비를 찾아가 그녀의 고충을 들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소원했던 임섭과의 관계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그는 특히 언궐에게 미안해 하였는데, 후에 언국구의 도움으로 진양장공주와 혼약하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북방지역의 활족이 말썽을 일으켜 5황자가 태자의 사병을 이끌고 가서 진압하게 되었다. 소선은 그때 임섭과 언궐을 데리고 국경으로 가게 됬다. 언궐은 소선에게 활족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했다. 소선은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상황이 어려워지자 곧 수락하였다. 전장에서 살을 부딪하며 함께 싸웠으니 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였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족 여인인 영롱공주에게 소선이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언궐의 마음은 착잡했으나 마음 한켠에서는 모든 일이 어렵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현비에게 정황을 알리고 준비를 부탁했다. 궁궐내의 분위기가 중요할 터였다. 아무래도 활족은 도적질을 하거나 잡기를 팔아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들을 천시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조정대신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금릉으로 전서구를 보낸 언궐은 소선에게 영롱공주의 무예가 출중하니 그녀에게 군주작위를 주고 금릉에 머물게 해 남은 활족들이 양에 귀속될 수 있도록 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소선은 그 의견에 찬성했고 영롱공주와 활족왕족들이 금릉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영롱공주는 예상외로 소선을 잘 따르며 금릉생활에 잘 적응했는데, 그녀를 따르는 많은 신하들 중에 아름다운 자들이 많아서 조정대신들을 접대하는 일도 간혹 하여 그녀의 세를 불려가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평화는 얼마 가지 못했다.

언궐은 금릉으로 돌아와서도 자주 영롱공주와 교류하였는데, 당시 시장에는 언국구가 활족과 사돈을 맺을 거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그 해 겨울이 오기전에 영롱공주의 행방이 묘연해지기 시작하면서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북연 국경에 시찰을 나가 있던 언궐은 그 곳에서 영롱공주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인 것은 그녀는 그 누구와도 혼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언궐은 그녀의 아이가 소선의 아이임을 짐작하고 그녀에게 말했다. 

“황자비가 되실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정대신들을 만나뵙지 않으셨습니까?, 귀비는커녕 미인, 재인이라도 되면 다행이지요. 그저 황자의 첩실이되어 후원을 거닐며 궁궐에 갇혀 사실 수 있으십니까?”

그녀는 어릴때부터 말을 타며 전장을 누비는 장수로 살았다.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던 소수민족이라 성별에 상관없이 손이 귀한 왕족의 딸로 태어났다. 한 곳에 머물러 정착하는 것은 그녀에게 족쇄를 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소선은 황궁에 거주하고 있으니 여성에게 황궁이란 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곳과도 같았고, 영롱공주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 대답을 듣지 못한 언궐은 그녀가 국경 지방에서 지내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배려하였고, 그녀가 금릉에 남아있는 식솔들과 연락하는 것도 도왔다. 언궐이 머무는 작은 촌락에서는 이미 그 두사람이 정혼한 사이라는 소문이 돌만큼 언궐은 그녀의 신변에 각별히 신경썼다. 

머지않아 아이가 태어났다. 언궐은 영롱공주 몰래 이 사실을 소선에게 전하게 하였는데, 부러 가장 먼 길을 돌고 돌아 전하라 하여 소선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은 1년이 다 지나서였다. 언궐은 아직 아이를 낳은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를 북연 조왕부성 별궁으로 가 몸을 풀게 하였다. 조왕은 아직 미혼 이었는데, 아름다운 영롱공주의 방문을 거절 하지 않았고 매우 살갑게 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소식 이후 몇 달 뒤, 영롱공주가 북연과 화친을 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받은 소선은 당시 금위군 장수였던 사옥과 함께 북연과의 국경으로 출정하였다. 

군사 적인 충돌을 막아보려 했으나 언궐은 이미 직감 하고 있었다. 소선은 비록 무심해 보이지만 본인의 것을 남에게 빼앗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미는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모든 황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활족은 반란을 꾀한적도 북연과 화친한 적도 없었다. 언궐은 소선이 국경에 수사 보내 놓은 현경사 사람들이 그런 소문들을 금릉으로 퍼다 나르는 것을 따로 제재하지 않았다. 소선의 이런 성정은 언궐에게도 놀라웠던 점이라 그는 소선이 군을 이끌고와 무고한 활족을 도륙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언궐은 영롱공주를 찾아가 그녀에게 지금의 상황을 말하고, 소선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아이가 소선의 생이라는 것도 믿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언궐의 조언대로 유언을 쓴 영롱공주는 그것을 언궐에게 전해주며 꼭 아이만은 살려 달라며 부탁했다. 언궐은 예를 다하며 그녀와 약속했고, 그 향낭을 현경사 사제였던 하강의 손에 들려 금릉으로 보냈다.  영롱공주에게는 누이동생인 선기공주가 있었는데 당시 그녀는 금릉에 남아 있었다. 

소선에게 끝까지 대적하다 전사한 영롱공주의 시신을 수습하며 언궐은 소선에게 말했다.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때 그녀는 금릉에 있었습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북연 조왕성부에서 몸을 풀게 된것은 아이를 낳고 몸이 좋지 않아 요양차 방문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 국경지방에서 그나마 제일 크고 편안한 별궁이 아닙니까? 그녀의 아이는 황자님의 소생이옵니다.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아직 어미 젖도 떼지 못한 아이이니, 금릉으로 데려가십시오 이 일을 아는 것은 저와 황자님 뿐입니다.”

그렇게 소경환은 금릉으로와 현비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언궐은 그 아이를 누이동생에게 건내며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인지 모두 말하였으나 현비는 의외로 담담했다. 현비는 인형처럼 앉아서 표정 없이 그 아이를 보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아이를 받아 들었다. 언궐이 국경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현비는 아이를 낳았으나 몇 일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후에야 들었다. 언궐은 그제야 현비의 담담함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를 잃은 어미에게 어미를 잃은 아이는 가엽고 애닳기만 한 것이었다.

활족의 하지도 않은 반란을 잠재운 소선에 대한 황제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하였다. 게다가 영토확장에만 관심이 많던 태자는 점점 더 문관들을 멀리 하였는데, 그 때문에 조정의 문관출신 고관대작들이 하나 둘 소선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

“태자와 대신들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점점 입지가 줄어드니, 태자비 마마께서 저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십니다. 다행히 황후마마께서는 경환을 예뻐하시어 자주 뵙는데 그것 조차 태자비마마는 불편하신지 문안인사를 가도 통 만나주시질 않으니 제가 황궁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현비는 언궐에게 고충을 털어 놓았다. 언궐은 태자와 5황자의 관계가 쉽게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선은 아닐지 몰라도 소정덕 그자는 무골이라 쉽게 구슬려질 것이리라. 그 어떤 황자가 황제자리에 욕심이 없겠는가. 그저 주변에서 황자를 황제로 만들 사람들이 필요한 것 뿐이다. 하지만 소선은 아직도 주변의 사람이 더 필요했다. 

“그가 뜻을 가졌으니 이미 반은 왔습니다.”

“저는 아직도 오라버니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비는 만나보셨습니까?”

언궐은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이 너무 낯설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마음속에서 지워지기도 하는 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직도 무엇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어 아직 뵐 수 없습니다.”

현비는 신비가 아이를 낳고 몸이 허약해져 사가에서 의녀를 입궁시켰다는 이야기와 언궐이 일로 금릉에 없었을 동안 순방영 통리 임섭과 진양장공주가 혼인하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진양장공주는 소선의 누이동생이었는데, 황실과는 겹사돈인 셈이었다. 황후의 소생인 리양장공주 역시 그녀를 따라 종종 사가로 나간다며 혹시 기회가 되면 그들과 안면을 터 놓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역적이 된 금릉에 남아 있던 활족은 모두 액유정의 노비가 되었으며, 그중 몇명은 언궐의 지인에 의해 사가의 시비가 되거나 저잣거리에 음방을 열어 노래와 춤을 팔았다. 그것이 꽤 인기가 좋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위대신의 첩으로 들어앉은 활족음방 출신 여인들이 있었다. 특히 언궐은 선기공주의 구명을 가장 중요시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하강의 아내였던 한부인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금릉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선기공주 역시 병사하고 말았다. 그녀가 죽기전에 언궐은 음률을 들으러 간다는 명목으로 선기공주의 기방을 방문하여 그녀를 한번 보았는데, 그때 국경에서의 상황에 대해 그녀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액유정에 갑자기 끌려가 노비가 된 그녀가 당시정황에 대해 세세히 알기는 어려웠을터라 그녀는 언궐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는 언궐에게 크게 감사하며 활족의 문양이 새겨진 작은 옥패를 언궐에게 주며, 혹시라도 나중에 홍수초가 도울일이 생기면 그 옥패를 보이면 될 것이라고 했으나 언궐은 그 옥패를 받지 않으며 말했다. 

“그저 저희 집안과 홍수초는 연이 닿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해 이로울 것입니다.” 

그 두사람이 만나는 것은 홍수초 내부에서 조차 아무도 몰랐는데, 선기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언궐과 홍수초의 연은 끝이 났다. 하강은 현경사의 장경사가 되었으며, 언궐은 한부인이 대유국 근처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처지가 어렵지 않게 언궐은 따로 사람을 보내 그녀를 돕게 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러 그 소식을 하강에게 알리도록 했다. 하강의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했기 때문이다. 

활족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 조정의 분위기는 묘하게 변하였는데, 그 동안 태자의 편에 서서 영토확장의 뜻에 힘을 실어 주었던 대신들의 재산이 전쟁으로 인해 계속해서 줄어 들고 있었고 태자는 그에 대해 특별히 보상을 해주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동안 큰 재해 없이 풍년이 들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으나 그 해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소선이 5류친왕되어 그 지위와 영향력이 예전과 달라져 버렸으니, 태자와 소선이 대립하는 구도가 되었다. 게다가 황제의 태도도 예전처럼 태자만 아끼지는 않았다.

부족해진 국고를 채우기 위해 운남국과 그 주변국을 닥달하던 양은 곧 남초의 침공을 받았는데, 언궐은 군사적 충돌을 막고자 백방으로 그 방법을 찾았다. 언국구가 친히 운남으로 갔지만 남초황제가 결국 제 성정을 이기지 못하고 출정을 했고, 황제는 활족반란진압을 성공한 소선을 남초로 보내 운남왕부와 연합하여 남초의 침공을 막아냈다. 황궁으로 돌아온 소선은 7류친왕이 되었고 남초황제의 아들인 성왕 우문림이 양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당시 운남왕부에 머물고 있던 언궐은 갑작스럽게 언국구의 뜻대로 운남 여문신의 막내여식 여화와 혼인하였다. 당시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후에 여화가 성왕 우문림의 이종질(우문림의 어머니와 여화의 어머니는 사촌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우문림이 양으로 올 때 언궐의 일행과 함께 였다. 언궐은 타향에서 온 아내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함께 임가에 자주 들렀는데, 강호 이곳 저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여화 역시 금방 진양장공주와 친해졌다. 당시 리양장공주는 가벼운 편두통때문에 리양장공주의 사가에 기거하며 진찰을 받았는데, 그때 성왕 우문림과 리양장공주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정세는 쉽게 변화 하였는데, 언궐은 딱히 누군가를 따르거나 무리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도처에 도움을 구할 곳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루아침에 전세가 역전된 무관들이 종종 언궐의 집을 찾아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태자와의 교류가 있었는데, 7류친왕이 된 소선은 조정업무가 바빠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선이 궁궐내에서 특히 가깝게 지내는 이가 있었는데 사옥이었다. 그는 권문세가의 자식으로 특별히 과거를 보지 않고 선대의 작위를 세습하여 형부주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무예에는 특출나지 않았으나 병법에 능하여 언궐은 인간적으로 사옥을 크게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병법만큼은 항상 칭찬할만 했다. 그 때문에 사옥은 언궐을 잘 따랐다. 

여화는 송진가루로 만든 다식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운남왕부에서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언궐은 북연근처를 방문할때마다 송진가루로 만든 다식을 금릉으로 보냈는데, 이후에 그것은 여화 뿐만아니라 리양장공주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양장공주는 도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때문에 도교가 일반적인 남초의 성왕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금릉 근처에 있는 도관으로 함께 다녀오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그 두사람을 좋게 보고 있던 진양장공주는 그 둘이 편하게 있게 해주기 위해 종종 임수를 데리고 함께 도관에 갔다. 두 사람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만 가기에는 이래저래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얼마 후 남초와의 관계가 회복되자 언국구는 다시 금릉으로 돌아 왔고, 우문림은 곧 남초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는 리양장공주와 혼인을 하고 싶어 하는 뜻을 내비쳤는데, 당시 조정은 태자와 소선의 알력싸움으로 상황이 매우 복잡해서 결국엔 그렇다할 확답없이 남초성왕은 다시 남초로 돌아갔다. 

소선의 동복동생인 리양장공주는, 황후가 제일 아끼는 자식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살갑기도 했으나 여식이었기에 황권다툼에서 자유로울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출궁이 남들보다 자유로워 황후에게 궁밖에 이야기를 소소히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리양을 멀리 보내고 싶지 않은 황후는 미리 태자에게 부탁하여 남초성왕의 부탁을 황제께 전하지 않은 것이다. 리양장공주는 남초의 성왕일 이후로 종종 궁궐에 언궐을 초대하였으나 빈번히 언궐은 궁궐의 법도를 운운하며 거절하였기에 애가 타는 것은 리양장공주 뿐이었다. 

성왕역시 언궐에게 자주 서신을 보내어 왔지만, 언궐은 일부러 그 서신을 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양장공주는 황후의 바램대로 사옥과 혼인하게 되었고 언궐은 두사람의 혼례전에 리양장공주를 찾아가 그동안 남초 성왕에게 받았던 서신을 몰래 리양장공주에게 전하며 말했다.

“이제 연을 끊어 내시는 것이 두 분을 위한 길입니다. 지금 서신을 써 주시면,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종이와 세필붓을 꺼내 건넸다. 그녀는 편지를 써서 언궐에게  주었지만 그는 읽지도 않았고 남초 성왕에게 전하지도 않았다. 그 서신은 후에 언국구에 의해 랑야각에 팔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탁씨부인과 함께 후사를 보았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한 아이를 잃고 살아남은 아이는 황제가 내린 소경예라는 이름으로 탁씨와 사씨집안의 아들이 되었다.

언국구가 국구부에 계시는 동안 여화 역시 회임하였는데, 몸이 좋지 않아 언궐은 걱정이 많았다. 조정역시 태자와 소선의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는데, 그 기세가 점점 소선에게 기우는 것이 보였다. 태자의 사병의 대부분은 금위군과 순방영 출신이었는데 현재 금위군의 수장인 사옥과 순방영의 통리인 임섭은 모두 소선쪽 사람이었다. 게다가 평소 문예를 멀리 하지 않았던 소선인지라 대부분의 문관들은 소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돌린 탓도 있었다. 정세를 보고 국구는 다급하게 언궐과 여화를 운남왕부의 처가로 보냈다. 언궐과 여화가 유람을 하며 운남왕부에 도착할때 즈음 금릉에서 5황자가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언궐의 손안에 있는 전서구가 바르작댔다. 그 전서구는 랑야각에서 온것임이 틀림없었다. 그 서신에는 소선이 황제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기왕을 제외한 모든 황자가 죽었고, 그 과정에서 여숭선생께서 연루되어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그 해 여름 여화는 아들을 낳았고, 곧 금릉으로 돌아왔다. 5황자의 난 이후로 조정에 발걸음을 끊으신 언국구에게 언궐의 아들 예진은 큰 위안이 되었다. 출산 이후 무리한 여정으로 인해 여화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몇 해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무엇을 주었는지 깨달았느냐?”

국구가 언궐에게 물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변하지도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의 덧없음을 논하면 세상의 모든 시간을 다 준다 해도 부족할 것이었다. 언궐은 스스로 마음을 비우리라 했지만, 돌아가는 정황이 재미있었다. 임섭은 날이 갈수록 황자, 아니 이제 황제다. 황제의 신임을 받을 것이고,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앞으로 소선이 하게 될 일들이 기대 되었다. 그는 참으로 순박하고 욕심없는 황자였는데, 5황자로써 제 스스로 황제의 자리와는 가장 멀다고 생각하던 자인데 지금 그는 황제가 되었다.

가진만큼 잃으리라. 잃지 않으면 잃게 만들어 주리라. 그리고 소선은 지금 그 꼭대기 자리에 앉아 평생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비록 본인 스스로 그 점에 대해 인지를 못한다 할지라도 얻은 것에 대한 값은 아직 반도 치르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황자에서 황제가 되기까지 소선은 많이 변했다. 소선은 자신의 새로운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주변에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들만 하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 자리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니었고, 그는 곧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줄이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늘려줘야 하고,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야 하며, 망하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처음 언궐이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을 잃었는지를 가장 크게 고민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는 잃은 것이 없었다. 소선은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였으나, 얻은 것은 크고 눈에 띄어 잘 보였지만 무엇을 잃었는지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자리 값으로 이미 제 형제와 아비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렇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소선은 더 많은 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있는 자이기도 했다. 언궐은 고개를 들어 국구를 보며 말했다.

“저는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의 혼란이 벌써 보입니다.”

언궐은 임악요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언궐 마음한켠에 여화와 함께 자리하며 그의 마음을 예전보다는 조금 무겁게 만들어줄 그가 좋아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앞으로 그녀의 일생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복잡할지도 모른다. 언궐의 생각을 읽은 듯 국구는 앞에 놓여있던 찻잔의 찻잎이 떠오르는 것을 후후 불며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

가을의 찬 바람이 도관의 풍경을 울린다. 곧 겨울이 올 테고 그리고 다시 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를 것이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려지지도 않을 테고 그렇다고 달라질 것도 없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언궐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행히 국구는 소선이 제 형제와 아비도 모자라 제 자식을 죽이는 참상은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선대국구의 봉호와 연호를 물려받은 언궐은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지켜보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보고 있다가 소선 스스로가 자신을 연옥끝으로 끌어내리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우며 그것을 지켜 보았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함께 흘렀으며 그는 세력을 만들지도 가담하지도 않았으며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예와 도를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들을 도왔다. 

순진하고 여렸던 언소는 황후가되어 신비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지만 언궐은 마치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인 것처럼 지켜보았다. 오히려 후에 황후의 처신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후 언궐은 황실에 발길을 끊었다. 종종 황후에게 서신을 보내야 할 때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상궁이나 나인에게 부탁하여 비밀리에 전하였다. 

한때 함께 강호를 유람하며 친분을 쌓았던 임섭이 7만의 군사와 함께 매령에서 사옥에게 죽임을 당할 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견된것이었다. 소선은 황제가 된 그 순간 그동안 자신이 쌓아놓은 모든 것을 발로 차버리고, 그가 하고 싶은것, 그가 듣고싶은 것만 보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예진이 사씨도 탁씨도 아닌 소씨 소경예와 친분을 쌓는 것도 지켜보았으며, 영롱공주의 아들이 예왕이 되어 2류친왕이 되는 것도 그저 보고 있었다. 

어느날 등장한 매장소라는 인물 역시,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임섭의 아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소동이긴 했으나 랑야각에서 노각주에게 받은 전서구에 그것 역시 확실해 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황궁에서 누이동생을 보니 그저 좋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참상이 다시 떠올랐다. ‘한번 보자, 너는 네 아비보다 얼마나 나은지 볼 것이다.’ 언궐은 생각했다. 

예진은 갑작스레 도성으로 돌아오시고는 다른 말없이 금릉에 머무르는 언국구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는 생각했으나 감히 묻지 못했다. 날은 좋았고, 곧 새해였다. 명절을 후하게 챙기시는 성정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발걸음 닿는 곳에 계시어 문안인사 드릴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얼마후 언궐은 예진을 사당으로 불러 조용히 말했다.

“곧 매장소가 집으로 발걸음 할 것이다. 그 후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사람을 대하는 마음에 있어 변함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하거라.”

예진은 더 묻지 않고 답했다. “아버지께서 그리 말씀 하시니 그리 하겠으나,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앞에 놓인 차와 다과를 느릿느릿 즐기며 두 사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차는 언궐이 도관유람을 하며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에서 제일 최상품으로 치는 차였고, 다과는 예진이 예전부터 좋아했던 송진가루로 만든 다식이었다. 언궐이 정월이 되면 어디에 있던 예진에게 보내왔던 그 다과를 올해는 두 부자가 나란히 앉아 즐기게 되었다.

여화

예진의 생모 여화는 죽은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을 주지 않는 언궐에게 항상 애정을 갈망하였는데, 예진을 낳고 몸알 푼지 얼마 되지않아 요괴에 홀인듯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언부는 도성과 근처현의 숲까지 모두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요괴는 조용히 그르렁 거릴뿐이었다. 가면을 쓴 모습은 사람이었으나 말은 하지 못하는 것인지 하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늦은 밤이나 혼자 외로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마다 나타나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 줬다.

예를 다하지만 마음이 없는 관계를 여화는 잘 견디지 못했다. 언궐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노력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었다면 여화나 언궐은 이루었어야했다. 하지만 두 사람중 아무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여화은 따뜻해진 날씨에 오랜만에 시종들 몰래 밤산책을 하다가 기다리던 손님을 만났다. 이렇게 몰래 혼자 와야만 만날수 있은 손님이었다. 

"이 배안에 있는 아이가 나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여화는 요괴의 품에 안겨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는 몸이 약해서 아마 아이를 낳다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이 아이라도 나를 닮아야 누군가가 이 아이를 보고 나를 기억해주지 않겠어요?" 

요괴는 배위에 올려진 여화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게며 여화를 조금 더 끌어당겨 안았다. 여화는 요괴의 가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천천히 벗겨진 가면뒤에는 미남자의 얼굴을 한 요괴가 여화의 눈을 바라보았다. 여화는 요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얼굴을 알았으니, 이름을 알아내어 나중에 구천을 떠돌게 되면 당신에게 갈께요."

여화는 여느때처럼 밝게 웃었지만 요괴는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여화는 날이 밝는 것을 보고 잠시 졸았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침상위에 있었다. 마치 꿈을 꾼듯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또 그렇게 외로움이 여화를 덥쳤다. 얼마 뒤 여화가 지내는 내실 문고리에 작은 옥패같은 것이 메달렸는데, 시비나 여화조차 눈치채지 못하였다.

산달이 가까워 곧 산파가 집에서 기거하게 되고 날이 점점 더 더워졌다. 칠월 보름이 되기 일주일 전쯤 산통이 시작되고 산파가 내실로 들어갔는데, 그때 언궐이 내실에 걸린 그 옥패를 보았다. 주역에 크게 관심이 없던 언궐이지만 그 옥패가 저승사자를 막는 액막이 부적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양과 내용이 기괴하여 의심하던차에 산파가 나왔다. 아들을 낳았으나 여화가 몸이 약하여 의원이 와야할것 같다고 고한 산파는 곧 주변에 있던 시비들에게 따뜻한물과 깨끗한 천을 부탁했다.

의원이 곧 도착하여 내실로 들어간지 한참만에야 산파가 강보에 싼 불그스름하고 꼬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이를 본 선대언후는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언궐은 여화에 대해 물었는데 산파는 의원님께 들으시라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선대언후는 체통과 예도 다 져버리고 젖먹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눈에서 아이를 떼놓지 않았다. 여화는 예진을 낳고 일주일만에 눈을 떳는데, 이상하게 아이를 찾지 않았다. 젖먹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피곤하다며 방에서 쉬곤 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곧 떠날 사람이 아이에게 정을 떼려는 것 같았다.

언궐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문고리에 있던 그 옥패가 어느순간부터 여화의 머리장식이되어 한시도 떼놓지 않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세달이 지났다.

아이는 선대언후가 전에 지어놓은 이름중 고르고 또 골라서 예진이라 지었고, 여화는 내실정원을 산책하다가 사라졌다.

여화가 사라진날 여화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침상을 받은 후 외출할 채비를 했는데, 시비들이 걱정이되어 묻자 답답하여 정원을 산책할거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외출을 하려는 것처럼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장신구로 치장을 했다고 한다. 그녀를 따르겠다는 시비들을 물리고 여화는 정원 제일 안쪽에 있는 연못으로 가는 것이 시비들이 그녀를 본 마지막 이었다.

시간이 지나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그녀가 걱정된 시비들이 여화를 찾아 온 정원과 국구부를 헤집고 다녔지만 결국 찾지못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목격된 연못 근처에서 여화가 머무는 문고리에 걸려있던 그 옥패가 발견되었는데, 그 옥패에 부적으로 쓰여있던 문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후에 언궐은 이 사실을 선대언후께만 말씀 드렸고, 여화는 산후통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언궐은 여화릉 찾기위해 수색을 하며 산에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주었는데, 그중에 하나를 몰래 빼돌려 여화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녀가 남긴 옥패는 선대언후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예진에게 주었다.

경예진의 세 문장

경예진의 세 문장 : '고작 이런 일로 기죽지는 않는다.', '잘못했어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예진은 오늘 이상하게 들떠서 금릉 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기왕야와 만나 음방에가서 음률을 듣기도 하고, 요즘 작곡하고 계시다는 곡도 들어 보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기왕야는 예진이 걱정된다며 친히 마차까지 내주셨다. 예진은 사양하지 않고 감사하다며 그 마차를 타고 집에 돌아 왔다. 

하루종일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가버렸다. 혹시나 기별이 와있을까 싶어 도관에 얼굴을 비추고 참배를 드린 후 내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하루를 보냈으나 다른 날과 달랐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어제 경예가 인사도 없이 천천산장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어제, 오늘은 함께 말을 타고 강가에 나가서 초식을 겨뤄보거나 오랜만에 근처에 있는 산사까지 말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해서 아침 댓바람부터 들떠서 녕국후부에 갔지만, 조찬을 들던 사필이 아침 일찍 경예가 금릉을 떠났다고 말했다. 

예진은 허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여 언제와도 같이 그냥 웃어 버렸다.‘고작 이런 일로 기죽지 않는다.’ 헤어지고 기다리는 것만큼 예진이 잘하는 것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겠지 나중에 돌아오면 알아서 ‘잘못했어요’하며 미안해 할 것이다. 그리고는 경예가 있는 동안 발걸음이 뜸했던 기왕야 소택을 찾아 가게 된 것이다.

도관에서 내실로 연결되는 안뜰을 천천히 걷던 예진은 순간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고작 이런 일로 기죽지 않는다’라 예진은 경예가 금릉을 떠나는 일이 스스로가 기죽을 일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따로 알리지 않고 갔다고 하여 섭섭하거나 아쉬운 것일까?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곰곰히 생각하던 예진은 다시 도관으로 발걸음 했다. 참선을 해볼 참이었다. 비웠다고 생각했던 마음에는 항상 소경예가 남아있다.


경예진의 세 문장 : '그 미소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야.', '견딜 수 있겠어?'

예진은 한없이 가벼웠다. 즐거운 일도 행복한 일도 언짢은 일도 어려운 일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모든 끊을 끊어내고 훨훨 날아갈 듯 가벼웠다. 그렇기에 그는 한없이 헤프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내어 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면 똑같이 서슴없이 내어 주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예진은 마음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 작고 소소한 다름은 소경예만이 볼 수 있었다. 그는 예진과 달리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기 때문이다. 한없이 가벼운 예진이 부러워 그를 곁에 두었고 어느 순간 경예는 예진의 마음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경예는 생각했다. 지금 제 앞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차를 마시는 언예진의 저 미소는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텅 빈 의미 없는 저 미소, ‘그 미소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예진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을 때 까지만 혹은 할 수 있을 때 까지만 했다. 눈치도 빨라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읽었다. 근데 그런 그가 유독 소경예의 마음은 읽지 않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항상 헤집어 놓곤 했다. 언젠가는 강가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지려는 것을 구해 놓았더니 속 없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강물에 비치는 색이 어찌나 고운지 혹시 들어가면 더 잘 보일까 해서 저도 모르게 몸이 기울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경예는 그 이후로 가끔 언예진의 가벼운 행동이 두려워졌다. 혹여 그를 남겨두고 훨훨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그러다 어느 날은 경예가 취하여 저도 모르게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네 라며 예진을 붙잡고 한탄을 하는 날이면 예진은 또 아무것도 모른 다는 듯이 화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경예가 정신을 놓는 것을 확인한 예진은 경예의 얼굴가로 손을 가져가며 “견딜 수 있겠어?” 라고 물었다. 예진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닿을 듯 말듯 했던 손은 결국 닿지 않았고 예진은 마차를 불러 경예를 녕국후에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밝게 웃으며 소공자를 놀리겠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비바람에 그가 잘 견뎌주길 바라며.


오로지 너만이 알고 있는것 같아

도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참선을 시도하는 것은 예진의 버릇이다. 머리와 마음을 가끔 비워주어야 다시 채울 것이고, 모든 것이 새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경예가 금릉에 머무르기에 이런 시간을 자주 갖지 못했지만 늦은 시각, 시비들도 모두 잠들어 어두운 그때 눈을 감고서도 찾을 수 있는 도관을 향한다. 

어린시절 예진은 항상 도관에 계시는 아버지를 뵙기 위해 어두운 밤눈을 불구하고 내실에서 멀리 떨어져 일각을 걸어야 보이는 언후부 도관에 찾아가는 일이 많았다. 할아버지인 선대 언후께서 그 때문에 걱정이 많으셨는데, 예진과 항상 그 밤길을 걸어 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도관에 앉아 참선하는 법을 알려 주셨는데, 항상 선대언후의 품에 안겨 침소로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원망하는 마음은 본인만 힘들고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선대언후는 예진에게 항상 마음을 비우라 하셨다. 마음이라는 것은 차고 넘칠 수록 흐르고 비어 있을 수록 움직임이 없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예진도 이제 조금은 그 뜻을 알것 같았다.

요즘들어 부쩍 소경예의 장난이 심해졌다. 마치 어릴 적 임수형님을 보는 듯, 먼저 농을 걸어오거나 시비를 걸어 오는 것이 티를 내려 하지 않았으나 예진의 마음이 비추는 것 같아 식겁했다. 

"오로지 너만이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아"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꿰뚫어져 삼켜질것 같았다. 소경예의 눈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데 손길 만큼은 다정했다. 어깨위에 둘러지는 팔이라던가, 손이라던가. 가끔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 할 때마다 잡아주는 손이나, 걸을 때 등 허리에 가있는 손 같은 것들이 참 다정했다. 예진은 그의 그 다정한 손길이 좋았다. 예진이 다정하게 살갑게 굴었으면 굴었지, 누구든 먼저 다가와 다정히 굴어주는 건 경예뿐이었다. 그만큼 예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두려운 이 마음, 그것이 오늘 언예진이 도관에 발걸음해 비우려는 마음이었다.


경예진의 세 문장 : '과연 가능할까?', '그리움에 흠뻑 젖은 몸이 무거웠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예진은 한번도 소공자를 욕정의 대상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사실 필이를 질투하면서 꼭 저런 형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더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경예가 양인으로 형질 발현하고 곧 옥구슬 굴러가듯 간드러지던 목소리가 낮게 변했다. 키가 점점 커지고 몸도 불어나더니 금방이라도 관을 올릴 것만 같이 변했다. 그런 경예가 낯설어 예진은 경예와 거리를 두었는데 그때 즈음에 경예가 천천산장으로 떠났다.

다시 경예가 돌아왔을 때는 마지막에 보았던 경예보다 훌쩍 자라 있어서 필이조차 어색해 했다. 그래도 그 다정다감한 성격은 그대로 인지라 필이도 예진이도 곧 다시 예전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경예가 관을 올렸다.

그 다다음해에 경예가 천천산장에 가 있을때 필이도 양인으로 형질 발현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에 예진은 필을 만나기 위해 녕국후부에 들렀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계절이 지나 예진도 관을 올렸다. 오랜만네 뵙는 아버지는 좀 더 여윈것 같다. 예식이 끝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은 없느냐고 물으신 뒤에 곧 뒷채에 있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바로 도관으로 훌쩍 떠나실 줄 알았던 예진은 비록 혼자 안뜰에 남겨졌지만 좋았다.

경예는 필이가 관을 올릴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올린 머리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보여줄 사람이 오지 않아 예진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예진은 글공부도 더 했고 금 타는 것도, 수련을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해가 지나 경예가 돌아왔는데 이제 소년태를 벗고 남자다웠다. 강호를 돌아다니며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예진과 필에게 들려주곤 했는데, 필이는 그것이 질투나 금방 토라져 가버리곤 했다.

결국 남은 예진과 경예는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강구경도 갔다가, 시장에도 갔다가 날이 좋으면 한동안 그렇게 붙어 다녔다. 그리고 예진은 경예에게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항상 형님같이 자상하고 다정한 경예가 친우로써의 감정이 아니라 애인에게서나 느낄법한 애틋함과 간절함을 느끼게 되었다. 

멀리 있으면 보고 싶고 만나면 닿고 싶고 괜히 더 만지고 싶은 그런 느낌이 예진을 괴롭혔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단순한 연정에 그치지 않고 욕정으로 그 크기를 부풀린 것이다.

경예가 강호로 떠나기로 정해진 날 예진은 경예의 손이며 어깨며 일부러 몸을 붙여왔다. 경예는 예진이 떠나는 것이 아쉬워 그러려니 하여 마주 잡아주거나 마주 안아주었는데 그때마다 예진은 경예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경예의 냄새를 맡았다.

예진은 경예를 대상으로 욕정하는것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의외로 너무나 쉬웠다. 그날 예진은 처음으로 수음을 했다. 예진의 입가에 소공자의 이름이 걸려있었으나 그것이 떨어지진 않았다.

경예가 천천산장으로 가는 날 예진은 경예를 배웅하거나 이별의 말을 전하지 않았다.그럴 수 없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예진은 소공자를 볼 낯이 없었다.

무더운 한여름 날도 화창하고 습하지 않아 바깥 나들이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예진은 추웠다. 몸에 따뜻한 이불을 휘감아도 떨쳐지지 않는 서늘한 기운은 예진의 형질 발현을 위한 전초증상이었다. 그리움에 흠뻑 젖은 몸이 무거웠다. 국구부는 조용했다. 그렇게 예진은 음인이 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언국후가 집으로 돌아와 예진을 살폈다. 이후 금릉에 예진의 소식이 퍼지고 곧 양나라 곳곳에서 예진에게 혼담을 넣어왔다. 하지만 언국후는 곧 도관으로 돌아가 버렸고 왕래하던 혼담도 그렇게 흩어져 버렸다. 

예진은 음인으로 발현된 후 유모와 의원에게 음인으로써 가져야 하는 행실과 몸가짐을 배우느라 바빴다. 무엇보다 체향을 조절하는 법이나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예진에게 그것이 쉽지 않았다. 

의원은 어려워하는 예진을 보며 걱정했으나 크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진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에 익숙해질 즈음 의원은 언국구가 계신 도관에 다녀왔다.

예진이 모든 걸 훌훌 털고 일어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다시 경예가 금릉으로 돌아왔을 때는 예진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런 소문들은 와전되고 와전되어 죽었다 거나 혹은 다른 나라의 높으신 분의 첩이 되었다더라하는 종류였다.

그 소문을 들은 경예는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올리자마자 바로 국구부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경예는 소문이 사실이 아닐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내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속내를 어쩌진 못했다.

예진은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고 아버지의 엄명으로 손님을 받는 것도 극히 제한되어 심심해 하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날씨는 점점 선선해지고 국구부로 들어오는 과일도 늘었다. 이런저런 짐짝이 들어오는 것을 바깥 뜰에서 구경하고 있던 예진이 문 앞에서 실랑이 하는 경예와 시비를 발견했다.

“송구하오나 언국구어르신께서 어르신이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손님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것을 묵묵히 보고만 있으려니 예진은 잔뜩 심통이 났다. 언국후의 처사가 틀린 것은 아니었으나 금족령이나 다를 바 없으니 손님도 들이지 말라는 말씀에 예진의 속이 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랜만에 금릉으로 돌아왔으니 잠시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시게.”

경예의 목소리가 들린다 . 예진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앉아서 실랑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곧 대문 쪽으로 나갔다. 아직도 집안으로 짐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얼굴만 보는 거라면 굳이 꼭 들어와서 봐야 하는가? 아버님의 말씀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는 못해도 이렇게 문간에 서있는 것 까지 뭐라 하시겠나?”

시비는 곤란한 듯 예진에게 어서 들어가시라고 재촉했으나 예진은 방실방실 웃으며 경예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언제 돌아왔냐며 반갑게 인사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금족령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해 좀이 쑤셔 죽겠다는둥 우는소리를 좀 하자 곧 유모가 나왔다.  “중추절에는 돌아오실 테니 그때 보세” 라고 말하는 예진을 끌고 들어가 버렸다.

그 일이 일어나는 동안 경예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저를 보고 웃는 예진을 보느라 넋을 잃었다.

경예는 코끝을 간질이는 귤향이 이르다고 생각했다. 벌써 귤이 나는 철이던가 생각하던 경예는 예진이 예전과 달라짐 없이 밝고 활기찬 것을 확인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추절이 되기 몇 주전에 언국구께서 귀한 약재와 귀중한 과일들을 챙겨 돌아오셨다. 예진은 예를 갖추어 인사하며 제발 밖에 나가게 해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거의 3개월 넘게 밖에 나가지 못한 것을 가엽게 여긴 국구는 미시를 넘기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외출을 허락했다.

다음날 예진은 신이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문안 인사를 드린 후 아침도 거르고 녕국후부로 갔다. 그 소식을 들은 경예는 예진을 몹시 반가워하며 맞이했다.

“금릉에 돌아온 지 벌써 한 달도 넘게 지날 동안 못뵈었더니 얼굴을 잊을뻔 했습니다. 언공자!”

예진은 저를 반겨주는 경예의 표정이 밝아 기분이 좋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간단한 요기를 한 두 사람은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강가에나 들르자며 말을 부탁했다. 오랜만에 승마를 한 예진이 신이 나서 빠르게 달렸고 빠른 예진의 속도를 맞추느라 경예도 속도를 냈다.

평소보다 더 빨리 도착한 강가 근처를 말을 타고 걸으며 흐르는 강물과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풍경을 구경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경예는 그 침묵을 깨기 위해 일부러 말을 강가 쪽으로 몰았는데 예진이 그것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경예 뭐하는 겐가? 그러다 물에 빠지겠어 어서 나오게.”

경예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일부러  더 깊게 들어갔고 곧 신발에 물이 닿았다. 그것을 본 예진은 덜컥 겁이나 경예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강물 쪽으로 철퍽 떨어져 버렸다.

“예진! 예진! 괜찮은가?”

경예는 얼른 말에서 내려 예진을 살폈다. 주인 잃은 말은 곧 겁을 집어먹고 마을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강물이 찰박찰박 떨어진 예진의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경예진의 세 문장 : '뒤돌아선 그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웠다.', '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머리부터 떨어진 예진은 특별히 다른 곳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로 3일이나 정신을 잃은 채로 지냈고 게다가 찬물에 빠져서 인지 나중엔 열까지 올라서 위험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경예만 괜히 미안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요양하고 첫눈이 내릴 즈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예진이 앓는 동안 경예는 한시도 옆을 떠나지 않고 간호해 주었는데 문득 예진이 어릴 적 자주 병치레 하던 것이 생각났다. 본디 건강하게 태어나지도 못했을 뿐더러 어미의 손을 타지 못하고 유모손에서 자라 많이 약했던 예진이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다친 것 같아 경예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경예진의 세 문장 :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바보 같기는.'

급하게 말을 달리는 소경예는 사실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다.’ 천천산장에서 금릉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급했다. 예의바르고 착한 소공자는 금릉으로 돌아갈때 제일 차갑고 단호했더랬다. 사실 소경예는 자신이 금릉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고 서두른다는 것을 잘 몰랐다. 언젠가 강호인에게 길안내를 위해 함께 금릉으로 돌아올때 그자가 경예에게 왜이리 서두르냐며 타박아닌 타박을 해대서 알게 되었다.

금릉에 기별을 넣고 말을 달려 꼬박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길을 경예는 혼자서 여행하기 된 다음부터 항상 5일안에 그 거리를 주파했다. 처음 그렇게 했다가 말에 병이나 시종이 애를 먹은 이후로는 돌아오는 길 중간중간에 있는 역참을 이용해  말을 바꿔 달렸다. 금릉 성곽이 보이고 길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하면 그때 고삐를 느슨히 쥐고 쉬었다. 금릉에 도착할때 즈음엔 이미 바삐온 기색따윈 모두 갈무리하고 느긋한 소공자가 말을 걸려 들어오는 것이다.

오늘은 가는 길에 있는 마을에 들려 말을 갈아타고 밤새 달리면 내일 저녁즈음엔 금릉에 도착할것 같았다. 마을이 가까워 오자 길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어쩔수 없이 속도를 줄일수밖에 없었다. 소경예는 근처 역참에 들러 말을 바꾸고 간단히 요기하기 위해 근처 노점에 앉았다. 소경예는 자신이 왜이리 서두르는지 알고 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해맑은 웃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푸스스 웃어버렸다. ‘너만 아니었어도…’라고 생각하며 만두 몇개를 집어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을 입구까지 바꾼말을 달래며 근처 노점상을 구경했다. 혹여 예진이 좋아할만한것이 없나 살펴보던 경예는 내심 생각했다. ‘바보같기는..마음에 언예진만 있어서 모든것이 언예진 위주로구나’ 한숨 쉰 경예는 마을 입구쪽으로 걸어 나갔다. 길끝에 해가 걸려있다. 말 머리를 쓰다듬던 경예는 한번에 올라타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금릉을 향해서, 그의 마음을 향해서.